사는이야기/책

[여자, 서른]

E.K.Lim 2017. 3. 30. 18:19
여자, 서른 - 10점
라라윈 지음/매일경제신문사(매경출판주식회사)


 벌써 한 5년 전쯤 된 것 같다. 한창, '왜 연애가 안 생기지?' 혹은, '내 연애는 뭐가 이리 험난하지?' 등등의 생각을 할 때, 연애블로그를 찾아 읽었다. 그 중 하나가, 라라윈이라는 블로거의 블로그, '서른 살의 철학자, 여자'였다. 자극적인 소재들로 '웃기는' 포스트는 별로 없었지만, 나름 차분히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글이 많았다. 그리고 벌써, 서른이 (거의 다) 되었다.

 프롤로그부터 빵 터졌다. 스물 아홉, 남친도 없고, 직장도 없고, 돈도 없는, 너무 평범해서 눈물 날 것 같은(?) 작가, 그리고 나의 이야기다. 서른이면 근사한 직장에 돈도 좀 모으고, 든든하고 멋진 남편도 있을 줄 알았건만 웬걸, 3없음 세트(?)를 다 갖춘 30대를 만나게 생긴 것이다. 딱 그 책 생각이 났다. '스물 아홉, 죽기로 결심했다'. 그러고보니 이 책을 스물 일곱쯤에 읽었던가...

 다행히 라라윈은 죽을 결심을 하진 않았고, '사회적 바람직성'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생각했다. 나는 이것이 나의 꿈이라고 믿고 있었지만, 사실은 어려서부터 봐 온 사회적 바람직성에 맞는 기준을 꿈으로 수용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요즘 내가 생각했던 개념이다. 스물 다섯이면 이래야지, 서른이면 이래야지, 서른 다섯이면 이래야지... 그런데 그 나이를 꼭 정할 필요가 있을까? 동안 연예인들을 보면 엄마 뻘의 연예인이 20대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데 말이다. 다같이 100살까지 사는데, 직장을 스물에 가지면 어떻고 스물 다섯에 가지면 어떻고 서른에 가지면 어떻냐는 것이다. (역시나, 내가 서른에 이래야 해? 하는 마음가짐만 없으면 말이다!) 그리고 여기서 하나 더 나아가,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내 자신을 긍정적으로 보이기 위해 자신의 긍정적인 면만을 부각시키는 자기기만적 고양(self-deceptive enhancement)나 자신의 부정적인 면을 거부하는 자기기만적 부인(self-deceptive denial)을 하게 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작가는 덧붙인다. 평소에 그렇게 김어준이 이야기하던, '이 상태 그대로 멋진 나'에서 한 발 멀어지는 셈이다. 아무리 자존감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나지만, 나도 모르게 자기기만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반성하게 된다.

 각 에피소드의 구성은 이런 식이다. 바람난 남친에게 투자한 본전 생각이 나 쉽게 이별하지 못하는 것을 '전망 이론'으로, 다 같은 처지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집안이든 능력이든 직장이든 점점 차이가 나서 생활의 모습이 달라지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서는 '사회적 비교'로, 내가 별 볼 일 없다 보니 아까 그 친구들의 이야기가 온 세상 진리인 양 대신 떠들 때는 '방사 효과'로, 다그치기만 하는 상사와 답답한 후배는 '인지용량과 입장 차이'로, 복잡한 인간관계와 인간관계를 복잡하게 하는 사람들의 성격은 '인성', '기질', '성격'이라는 비슷하지만 다른 개념으로, 이렇게 심리학의 용어를 들어 설명해준다.

 서른이 되면 뭔가 완성이 되어야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읽고 들었지만, 스물 여덟에서 스물 아홉이 되듯이 그냥 스물 아홉에서 서른이 되는 것뿐이라는 것, 그러니까 부담가질 필요 없다는 것. 즐기고 좋아하는 취미를 위해 이것저것 경험해보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좋아하지도 않는 것을 억지로 아는 체 하기보다는 좋은 기호를 가진 친구 덕 좀 보면 된다는 것. '멀쩡한 남자는 다 짝이 있다'며 30대에는 모든 연애가 다 끝나버린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차라리 맘을 편히 내려놓으면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 특징'같은 것과는 전혀 무관하게 내 인연이 슬그머니 찾아오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다는 것. 조금씩 깨달아가고는 있지만 확신이 없었던 명제들에 조금 먼저 서른을 지나본 언니가, 던져 주는 조언들이 고마웠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그냥 재밌어'로밖에 이야기할 수 없었던, 공부를 좋아하는 이유를 하나 더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돈은 없어지지만, 지식은 누가 나만큼 온전히 빼나갈 수가 없다는 것. 내가 다 빼주더라도, 그 지식은 오히려 나에게 강화되어 남아 있다는 것! (정말 멋진데?) 그러니까, '메타인지(meta-cognition: 자신을 타자화하면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 자기 성찰 능력)'을 갖고, 하루 하루 쌓여나가는 나를 상상하면서 살아가야지. 더더더, 재밌게, 알차게. 언니,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