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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아이디어를 쏴라, <룬샷>

E.K.Lim 2020. 10. 8. 18:00

‘룬샷’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으면 혹시 ‘moonshot’을 찾으려던 건 아닌지 물어본다. 누구나 환호할 만한 ‘달 탐측선 발사’ 아이디어를 의미하는 moonshot과 대비시키기 위해 ‘미치광이’, ‘얼간이’라는 의미를 지닌 ‘loon’이라는 단어로 변형시킨 말이다. 즉, 룬샷이란 ‘언뜻 미친 것처럼 보이는 아이디어’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주창자가 ‘미친 자’ 취급을 받기에 딱 좋아보였던 아이디어를 어떻게 ‘전쟁을 이기는 기술’, ‘업계를 바꿔놓는 전략’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문화보다는 구조, 혁신보다는 설계가 중요하며, 이를 ‘물리쟁이’인 저자의 시각에 맞게 ‘상전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탁월한 주가 실적을 가진 기업으로부터 조직 문화의 성공 팁을 묻는 것은 마치 로또 당첨자에게 당첨될 때 무슨 색 양말을 신고 있었는지 묻는 것과 같다(p.25)’. 저자는 자신이 물리학자이기 때문에 문화보다 구조를 중시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물리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이후 가까이해본 적 없는 나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도 조직의 구조를 고민하지 않으면 좋은 사람들이 몸을 바쳐 희생하다가 그야말로 까맣게 타버리는 경우를 보았기 때문이다.
‘상전이’라는 말이 좀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데, 사실은 모두에게 익숙한 ‘얼음물’ 상태를 생각하면 된다. 고체가 액체로 변하는 지점, 즉 물이 녹는 점에는 얼음과 물이 공존한다. 이 때 물 분자를 고체로 두고자 하는 ‘결합 에너지’와 무질서를 지향하는 ‘엔트로피’가 서로 힘을 겨루게 된다. 저자는 이 상태에서 조직의 모습을 착안했다. 룬샷을 만들어내는 그룹과 프랜차이즈를 유지하는 그룹을 분리하고, 이들 간의 힘의 평형을 맞추는 것이다.
여기서 ‘룬샷’과 ‘프랜차이즈’는 BCG 매트릭스의 Question Mark와 Cash Cow의 개념으로 이해해볼 수 있겠다. 안정적으로 수익을 창출해주는 Cash Cow 상품 부서에서는 기존의 상태를 유지하고자 할 것이고, 아이디어가 있기는 하나 어떻게 될지 모르는 Question Mark (혹은 Dogs) 부서에서는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새로운 Cow로 만들고자 할 것이다. 조직 내에서 이미 성공해 성을 지키는 ‘병사들’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펼치는 ‘예술가’를 분리하고, 이들 간의 균형과 소통을 관리하는 것이 바로 책임자가 할 일이다.
이를 위해서 시스템 사고를 퍼뜨려 조직의 선택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를 찾고, 사내 정치의 효과를 줄이기 위한 노력들이 필요하다. 예컨대 ‘가짜 실패를 경계’하고, ‘호기심을 갖고 실패에 귀기울’이며, ‘결과주의 사고가 아닌 시스템 사고를 적용’하고, ‘정신, 사람, 시간’을 놓치지 말라는 것이다.
본의 아니게, 조직을 이끈다면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를 여러모로 배운 한 해였다. 그런 기회가 온다면, 원칙 안에서 유연하게 사고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조직을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지만, 사람들을 한 방향으로 묶어줄 수 있는 것은 구조라고 생각한다. 씁쓸하고 안타까우면서도 홀가분하게 읽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