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이야기/책

내 마음의 방어 기제, ‘어쩐지 도망치고 싶더라니’를 읽고

E.K.Lim 2019. 3. 2. 15:56
저번에 빌려온 마음 책 중 가장 처음의 의도와 맞는 책이다. 내 마음이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빌어 들여다볼 수 있는 책. 괜히 내일 시험을 앞두고 딴 짓을 한다거나,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화를 버럭 낸다거나, 다 도망쳐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내가 정말 왜 이러지? 를 알아보기에 좋은 책이었다. 읽기 쉬운 이야기로 쓰여 있어 출퇴근 길에도 술술 읽혔다. 좋아하는 작가인 김보통 님의 일러스트도 마음에 들었다. 나와 비슷한 고민들을, 책에 나올 만큼 다른 사람들도 많이들 하고 있다는 것도 은근히 위로가 되었다.
하루를 살아내는 건 파도가 밀려오는 바다에서 수영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한다. 바닷속에서는 가만히 버티는 것도 힘들 때가 많다. 마음에 에너지가 많을 때는 그래도 나름 성숙하게 행동할 수 있는데, 마음에 에너지가 소진되었을 때는 내가 나를 붙잡기가 힘들다. 스물 다섯, 서른이 넘어가면서 에너지가 예전같지 않다는 걸 이해하게 되었다. 의도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선에 맞추어서 계획을 우선순위에 맞춰 잘라내기도 했다. 
마음의 에너지를 덜 쓸 수 있는 직장으로 옮긴 것도 그 중 하나였다. 꿋꿋이 이겨내는 동기들을 보고 내가 도망친 것이 미숙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책을 읽다 보니 역시 잘 한 일인 것 같다. 아니, 잘 했다 잘 못 했다를 평가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닌 것 같고, 그 때의 마음 에너지와 지금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결과는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상상할 수 있는 케이스 중에 가장 좋은 건, 곧 좋은 부서에 배치받아서 휘황찬란한 경험과 업무마스터가 된 내 모습 정도? 였을 것 같다. 연봉도 지금보다 훨씬 높고, 음.. 또 뭐가 있을까.
지금의 내 모습은 그런 걸 다 포기하고 아직도 갈 길을 헤매는 나. 이게 더 좋을지, 저게 더 좋을지, 매일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나. 그렇지만, 마음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파도가 훨씬 부드러워 하루 하루를 살 만 하다. 책도 실컷 읽을 수 있고, 시간도 더 많고. 조금 더 느긋하게 갈 수 있게 된 것 같다. 어떤 것을 포기한 만큼 다른 것들을 얻었다.
그리고 또 하나, 여기 나오는 정신과 선생님들만큼이나 서로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할 수 있는 J라는 좋은 친구가 있다. 사실은 그게 제일 좋다. 이런 나라도 괜찮을지, 물으면 항상 괜찮다고 말해 주는 사람이 있다. J도 내 모든 걸 다 알지는 못하니까, 나도 J의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을 테지만, 그래도 아주 작은 이야기들도 할 수 있어서 참 좋다.
마음이 힘들 때 힘든 대로 끌려가거나 끌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거나 그러지 않고,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를 결정할 수 있게, 한 숨 쉬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왜 이 상황에서 힘들어하는지를 들여다보고, 때로는 그런 나를 스스로 위로하려고 한다. 이번에는 성숙하지 못하게 행동했지만 너무 실망하지 않고 다음 번엔 조금 더 잘 할 수 있다고 나를 토닥여주고자 한다. 할 수 있어, 충분히 연습이 되지 않아서 그랬던 거야. 이제 잘 아니까 다음번엔 더 잘 해보자. 사랑해, 하고.

근데 진짜 내일 시험은 어떻게 하지. 으억. 이건 피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그냥 하기 싫은 거니까..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보자... 하하.... 또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