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이야기/책

자기계발서 속에서 파랑새를 찾아다니다

E.K.Lim 2019. 2. 25. 23:00
‘딱 1년만, 나만 생각할게요’를 읽고

내가, 내가 또 망쳤다. 그 친구가 여러 사람을 한번에 만날 모임을 마다하고 나를 만나러 온 데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나를 매력적인 사람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고, 내게 물어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웬걸, 어디서부턴지 친구에게 조언을 준답시고, 그동안 궁금했던 근황을 업뎃한답시고, 그 친구에게 뭔가 따져 묻고 있는 듯한 분위기가 되었을 때, 친구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난 또 생각했다. 나는 밝고 따뜻하고 지혜로운 언니로 남기는 틀렸구나. (그애의, 아니 사실은 나의) 마음을 달래보고자 기프티콘을 하나 더 보냈으나 더욱 물색없고 비루해 보였다.
나는 정말 왜 이럴까, 를 생각하다가 이건 나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는 내 마음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짜고짜 도서관으로 달려가 마음과 관련된 책을 집어들었다. 맨날 데이터 책만 읽다가 이런 책은 또 어디서 찾았대, 신기한 듯 J는 말했다.
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 이 책에 딱 맞는 격언이다. 나는 이 책이 내가 집어든 몇 권의 책처럼 마음과 관련된 책인 줄 알았다. 아니면 요새 유행하는 힐링서거나. 둘다 아니었다. 이 책의 원제는 ‘HELP ME!’고, 이 책이 5년 전에 나왔다면 이 책의 제목은 ‘자기계발서로 자기계발하라’ 정도가 됐을 것이다. 마침 요 책 전에 읽은 책이 출판 기획에 관한 책이었다. 최근의 트렌드를 읽고, 사기와 포장의 묘한 중간 어디께에서 제목을 짓고 표지를 그려서 한 번이라도 더 손이 가게 만드는 비법에 대한 이야기. (그 책을 뭐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효과적으로 책을 홍보하는 자기만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보여준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으아니. 이건 내가 생각한 이야기가 아니잖아.
그런데 이 주인공, 우울한 상황을 타파해보려고 찾은 게 또 책이라니. 책 속에는 정말 길이라도 있단 말인가. 어쩌다 보니 하필 지금 내 이야기였다. 헛웃음을 지으며 빠져들어 읽어나갔다.
주인공이 한 달에 한번씩 실천하기로 마음먹고 읽었던 책은 대부분 나도 읽었던 책이고, 꼭 그 책이 아니더라도 비슷한 결의 책은 차고 넘치기에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일부러 거절을 당해보기 위해 무리한 부탁을 시도해보다가 자신의 지평을 넓힐 때는 얼마 전 읽었던 ‘체헐리즘’ 기사가 떠올랐다. 
주인공만큼 빚을 많이 지고 있지는 않지만 돈 관리 책을 읽고 백원 오십원을 아껴보겠다고 바둥바둥하더니 집에 가면서 삼만오천원짜리 곱창을 테이크아웃해가는 나 또한 주인공과 크게 다른 게 없었다. 자기계발서를 읽고 무작정 따라하다가 주위 사람들에게 등을 돌려버린, 아니 자신의 목소리에 갇혀버린 것조차. 마침 주인공의 엄마 또한 인생에 대해 이런 저런 거창한 생각 속에 빠져 사는 나와 달리 심플하고 성실하게 하루 하루를 살아내는 우리 엄마 같아서 웃음이 났다.
아, 또 하나. 그러다가 주인공이 우울한 마음을 딛고 올라오게 해 준 책이 ‘마음 산책’이라는 것도. 이제 마음에 대한 책을 읽을 때가 되긴 했었구나. 허허허.
결국은 그런 이야기다.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돈 관리도, 연애 스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다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유대감이라는 것. J에게 새삼 많이 고마웠다. 항상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힘들면 힘내지 않아도 괜찮다고, 더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감사하다. 이 책의 마지막에 주인공이 책이 아닌 친구들에게서 파랑새를 찾았듯 따뜻한 J에게서, 뜬금없이 전화해주는 친구에게서, 인생 너무 위로 올라가려고 애쓰지 말라는 속편한 엄마에게서, 나의 파랑새를 찾은 듯 하다.

그나저나, 시크릿 그거 좀 일리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야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이루어준다’는 말이 무슨 토테미즘처럼 우스갯말이 됐지만, 실제로 이 책이 22개국에 판권이 수출되면서 주인공은 ‘대박작가’가 되지 않았는가!?!? 그렇담 저도 부자가 되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