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이야기/책

<살이 찌면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다>를 읽고

E.K.Lim 2021. 8. 7. 23:20

“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 그래서 적어도 목차까지는 읽었어야하는데, 오늘은 오랜만에 책을 읽(을 수 있)는 날이라 몇 끼 굶은 사람이 식사하듯 허겁지겁 주워담느라 어떤 내용인지 파악하지 못했었나보다. 목차는 못보고 작가만 봤다. 보통 잡지 에디터가 쓴 책들은 어느 정도 글의 완성도가 보장되니까, 라고만 생각하고 믿고 봤다.
아, 글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다만 “살이 찌면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이러저러해서 아니고, 너희도 잘 극복할 수 있어!”와 같은 이야기를 기대한 게 오산이었다. 글의 80%는 내가 왜 폭식증에 시달렸는지를 찬찬히 되짚어가는 과정이다. 에.. 그리고 갑자기 나는 이제 폭식증이 아니다! 이렇게 끝난다. (이렇게 끝나진 않는다.) 그렇지만.. 폭식증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길고 힘든 서사에 비하면 극복의 이야기는 너무 갑자기 우연히.. 되어버린 것 아닌가요..? 내가 섭식장애를 앓아보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원래 이렇게 갑자기 괜찮아지기도 하고 그런 건가요..?
음, 이런 부분이 조금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폭식증 극복기’를 기대했던 나의 잘못일테다. 그보단, 실명을 내놓고 쉽게 꺼내기 어려웠을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놓는 작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런 이야기를 남에게 해 본 게 언제적이더라. 청소년 캠프에서 다른 학교 친구들을 만났을 때, 처음 만났고 언제 또 볼지 몰라서인지 단짝 친구들에게도 쉽게 이야기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술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느낌이었다. 엄마 아빠 이야기까지, 이렇게 솔직하게 해도 되나? 그만큼 잘 갈무리된 기억이어서 이제는 단단해진 내면으로 담담하게 할 수 있는 이야기였겠지? (hopefully)
얼굴도 모르는 작가 님이지만.. 멀리서 잠시 기도해요. 이제는 행복하시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