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이야기/책

<너무 신경썼더니 지친다>, 섬세한 당신을 소중히 여겨주세요

E.K.Lim 2021. 8. 7. 19:04

20대 중반에, 친구가 여행 도중에 나에게 ‘E야, 나 정말 괜찮아.’라고 단호하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깨달았던 것 같다. 나는 정말 다른 사람을 신경쓰고 있구나. (그 친구에게 참 고맙다.) 그 뒤로 다른 사람이 신경쓰여도 의도적으로 어느 정도는 무시하려고 애썼다. 그래, 저 사람은 내가 저 사람을 신경쓰는 만큼 나를 신경쓰지 않지.
이 책은 나같은 사람을 많이 만나고 상담한 일본의 상담가가 쓴 책이다. 이런 사람을 High Sensitive Person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나는 어릴 때부터 ‘잘 우는 애기’였다. 시골에 친척들이 다 모였을 때 하필 목청도 커서 캥캥 하고 우는 여자아기를 나무라는 친척 어른들의 눈초리를 받았던 이야기를 엄마는 두고 두고 되풀이했었다. 그룹 활동에서 소외되는 애가 있는지 눈치로 알아채는 어린애를 담임 선생님들은 예뻐했고 믿음을 주었다. 마음이 맞는 그룹에선 누구보다 행복해하지만, 이기적인 사람들을 못견뎌했고 어린 마음에 그런 친구들을 싫어하기도 했다. 지금도 주변에 그런 사람들은 있지만.. 그게 이기적인 게 아니라 이 책에서 나온 것처럼 ‘깊이가 없는’ 사람일 뿐이고, 그것은 우열이 아니라 키가 크고 작은 성질일 뿐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남들의 일은 남들이 하게 두는 것, 부탁받지 않은 일은 먼저 해주지 않는 것, 무례하거나 부정적인 에너지를 내뿜는 사람들에게는 물리적인 거리를 두는 것, 이렇게 거리를 맞추어가는 것이 나 자신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관계를 만들어서 상대방에게도 좋은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이해한다. 책에 나온 것처럼 내 마음이 ‘좋은 일’로 인정하지 않으면 나의 일이 거짓인 것만 같아 괴로워하던 나에게 ‘잘 도망쳤어’, 하고 도닥여줄 수 있다.
‘이것도 저것도 잘하고 싶어서 강을 거스르기보다는 잘하는 것을 더 잘할 수 있도록 흐름에 몸을 맡기라’는 조언은 아직까지 따르기가 어렵다. 언젠가 내가 뾰족해져서 다른 분야는 배우려고 하지 않는, 굳어버린 내가 되기 전에, 지금은 더 넓게 파고 싶은 욕심이 있다. 괴로우면서도 그 과정을 좋아하는(?) 이상한 사람이니까, 조금은 이렇게 더 해보고 싶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심리테스트를 하면서 호들갑떠는 아이마냥 즐거웠다. 내가 어릴 때부터, 특히 성인이 되고 난 20대에 온갖 시행착오를 거치며 깨달아온 내용들을 쉽고 따뜻하게 정리해주어서 공감이 많이 되었다. 오늘 어디 대나무숲 우거진 카페 가서 힐링이나 할까 했었는데, 집에서 차를 마시며 이런 책을 읽는 게 나에겐 바로 힐링인가 싶다. ㅎㅎㅎ 바다 건너 일본에서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상담하고 있는 다케다 씨,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