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이야기/책

나도 알고 보면 기술자! <일상기술연구소>를 읽고

E.K.Lim 2021. 7. 22. 20:41

일하는 여성들의 모임, 헤이조이스 활동을 한다는 건 수많은 장점이 있지만 I같은 E NTJ인 나에게 있어 가장 큰 장점은 멋진 여성 선배님들의 이야기를 가까이에서 듣고, 또 그 분들의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그 분들의 친구의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청소년 시절 덕질도 한번을 콘서트도 못가고 방에서만 숨듯(?) 하던 그 성향 어디 못 가서, 멀리서 그 분들의 책을 찾아 읽고 영상을 찾아 보고 SNS를 팔로잉하고(소심해서 친구 신청도 못함) 강의를 찾아 듣는 게 큰 즐거움이다.
그 멋진 '언니' 중 한 분, 제현주 님의 글이라서 읽었다. 프로필만 보면 누구보다 잘 나가는 길을 걸었을 것 같은데, 갑자기 롤링다이스를 하시게 된, 그 시점쯤 하시던 활동, '일상기술연구소' 팟캐스트의 내용이다. 팟캐스트에는 매 회마다 '일상의 기술자'가 출연한다. 전기 배선 타일 목공 이런 것만 기술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제가 프로와 아마추어를 구분하는 기준이 있어요. 자기 일에 대한 가치를 값으로 환산해서 당당하게 요구하느냐입니다."
역시, 가장 먼저 다루는 내용은 '돈 관리의 기술'이다. 박미정 님의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이 문장을 '너는 너의 몸값을 얼마라고 측정하고 있니? 너무 후하게 혹은 박하게 매기고 있는 건 아니니?'의 의미로 이해했다. 그리고 지금 타이핑을 하면서 다시 읽었는데, 이 문장은 '얼마나'가 아니고 '환산'과 '요구'라는 것을 하고 있느냐, whether의 문제여서 다시 또 띠용했다. 저번에 읽었을 때는 연봉계약서에 적힌 내 시급을 찾아보고 한숨 푹- 쉬고 말았는데. 나, 내 스스로 내 가치를 환산하고 있었나? 적게라도 일단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감당하지도 못할 일을 자꾸 벌이는 사람이 회사에서는 눈치를 보게 되는데(물론 웃긴 게 그런 사람들은 눈치를 안본다) 밖에서는 어떨까? 이로 님은 '감당할 만한 규모로 시작해서 스스로 뻗을 수 있는 수준까지 뻗어나가는 것이 일 벌이기의 기본'이라고 말해준다. 와우 매우 agile한 걸(애자일 중독). 그래, 어쨌든 내가 다 감당만 하면 되지 뭐. 회사에서야 다른 사람들이 괜히 일을 받을 수 있으니까, 나는 내가 할 일만 만들지 뭐. 김호 님은 한 가지 일을 하면 집중력이 떨어지니까, 다른 일을 만들어서 도망친다고도 한다. 단 한 번의 기회나 영광이 찾아오리라 기대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기에, 조금씩 자주 시도하는 것인데, 그만큼의 에너지를 갖고 있다는 게.. 우선 부러웠읍니다요.

그래도 공부 하나는 재밌어하니까, 이고잉 님의 '배우는 일에서의 슬럼프를 표현하는 일로 풀고, 표현하는 일에서의 슬럼프를 배우는 일로 풀고, 이 두 가지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간다'는 말에 힌트를 많이 얻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책읽고 글 씀. 어디 다른 데 적어놓을까 고민도 했는데, 정리의 기술을 알려준 정철 님이 '합치려고 하지 말고 내버려두되 종류가 너무 많이 늘어나지 않게만 관리'하라는 팁을 보고 일단 책읽고 나서 쓰는 글은 블로그에 쓰기로 했다. (네이버 블로그에 있는 건 또 어쩌지.)

일에는 자아를 채워주는 일과 통장을 채워주는 일이 있다고 한다. 각각 어떤 일이 해당할지 생각해봤는데, 감사하게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은 통장을 채워주면서 자아도 조금은 채워준다. 데이터를 분석하고 내가 속한 조직의 서비스를 좀 더 발전시켜가는 일. 일단은 재미있고, 성취감도 있고. (그래도 보고를 위한 보고, 관리를 위한 관리는 좀 덜 했으면 좋겠어요.) 한편으로는, 내가 자아를 채워주는 일로는 돈을 못 버나..? 싶어서 조금 머쓱하기도 하다.

프리랜서의 핵심 기술 첫 번째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외부에 알리는 거라고 한다. 근데 나같은 사람도 프리랜서를 할 수 있을까..? 난 내가 나를 알리는 게 너무 낯부끄럽다. 유튜브에서는 너를 알려야 돈이 된다, 한 달 천만원 버는 법, 연봉 일억 찍는 법, 이렇게 엄청 떠드는데 나는 그게 영 맘이 안 간다. 몸을 담았던 어떤 집단의 사람들이 자기 것은 하나도 없으면서 이것저것 짜집기해서 강의하고 컨설팅하고 멘토링하는 걸 보고 그게 더 싫어졌다. 앞서 잠깐 이야기했던 헤이조이스에도 뭔가 도움이 되고 싶어 펠로우 지원을 하려다가 결국, 내가 이거 하나는 남들한테 조언할 수 있다!고 공표하기가 영 찜찜해 그만두었다. 더 내실있는 사람이 되면 자연스럽게 알려지지 않을까..? 하고. 같이 일을 했던 사람에게 같이 일하자는 제안이 들어올 때는 '아 내가 틀리지 않았어' 싶다가도, 허허.. 앎이란 무엇인가, 내가 너무 꺼내는 연습을 안해서 그런 건가!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ㅎㅎ

아 맞다. 어디 넣어야할지 몰라서 안 넣은 문장. 언젠가 프리랜서가 되면 꼭 써먹어야 할 꿀팁! "계약서를 쓸 때는 수정 횟수를 제한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