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이야기/책

용감한 여성들의 에세이,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지구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

E.K.Lim 2020. 10. 20. 22:30

20대를 넘어서서 30대에 들어서는, 혹은 그보다 나이가 많은 여성들이라면 99.9% ‘예쁘게’ 보이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너무 높게 잡았나..? 그렇지만 나보다 나이가 스무살쯤 많은 직장 선배들조차 능력보다는 외모가 젊고 아름답다는 말을 더 좋아했’었’다. 우리말에는 과거형에 ‘었’을 넣지 않아도 되지만 굳이 ‘었’ 자를 넣은 이유는, 이 지겨운 무드가 드디어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예쁘다는 칭찬은 물론 감사하지만 사실 식상하고 지루하다. 너무 많이 들어서 질렸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 나는 예쁘기보다는 멋지고 싶고, 멋지다는 말은 주로 당당한 태도와 성숙한 행동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여성에게 일반적으로 칭찬으로 쓰이는 예쁘다, 아름답다, 섹시하다 등의 단어가 유약하거나 풍만한 외모를 꾸미는 것과는 다르다. 10년 전, 5년 전, 3년 전의 나를 생각하면 또 다음 3년 후, 5년 후, 10년 후에는 이 단어들을 어떻게 정의할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지금은 그렇다.
이렇게 된 것은 대한민국에서 누군가가 쏘아올린 작은 공 때문일 것이다. 그 이야기를 다 하려는 것은 아니고, 내가 이런 분위기의 변화를 느끼게 된 것은 SNS에서 당당하게 자기 의견을 표현하는 여성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진아 님의 이 책은 그 흐름 안에서 술술 읽히는 책이었다.
일하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생각할 만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우리나라 성인 중에 일하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긴 하다.) 50대 이상의 여성 선배님들이 남성의 사회생활 체계 안에서 여성으로서의 변형된 방식에 대해 조언해준다면, 김진아 님은 한 세대를 내려와서인지 조금 더 급진적인 이야기를 해준다고 느꼈다. (물론 여성 선배님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귀중하다. 맞고 틀림이라기보다는 각자가 줄 수 있는 최고의 것을 주시려고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말하고 설치고 생각하는’ 여성들이 모여 있는 온오프라인 커뮤니티 몇 개에 소속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조금 더 급진적인 커뮤니티에서 사용하는 단어(ex. 탈혼)를 사용하시는 점이 인상깊었다.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물론 생각도 못하는 사람도 많다.) 이걸 말로 꺼내기까지 두렵고 힘든 점이 많다. 하물며 어쩌다 몇 명이 방문하는 블로그를 쓰는 나도 그렇다. 좀 더 둥글게 말하고 모호하게 표현해야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자기 얼굴을 내놓고 ‘난 이런 사람이고 이런 생각을 합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김진아 님이 정말 멋져 보였다. 나도 좀 더 용기를 담아, 조금 더 이야기해보고 싶다. 아, 그렇게 생겼나보다 그 문구는, “우리는 서로의 용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