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이야기/하루하루

말랑말랑하고 알록달록한 <보건교사 안은영>의 세계 (시즌1)

E.K.Lim 2020. 10. 10. 15:22

정세랑 작가님의 이야기는 항상 재미있다. 단편이든 장편이든 통통 튀는데 줄기가 단단하다. 정세랑 작가님의 원작이라면 당연히 재미있을 것으로 생각은 했다.
아하, 감독이 이경미 님이구나. 이경미 감독님이 나에게 주는 이미지는 ‘미쓰 홍당무’다. 그 전까지 내가 만난 여자 주인공은 예쁘거나 착하거나 아니면 예쁘고 착하거나 셋 중 하나였다. 예쁘지도 착하지도 않은 평범한 여성의 이야기. 스무살에 이 영화를 보고 난 감상은 익숙하지 않은 것에서 오는 ‘불편함’이었다. 그리고 십여 년 동안, 내 삶이 클리셰 같을 거라고 믿었던 초롱초롱 스무살은 불편한 그대로가 삶이라는 것을 서서히 스며들듯 받아들이는 서른 살이 되었다.
올해야 그렇다 치더라도, 작년 한 해 영화관에 가서 본 영화가 정말 손에 꼽을 거다. 캡틴 마블, 걸캅스, 어벤저스 시리즈 정도 되려나. 똑똑하고 능력있는 사람들이 시원하게 악당을 처부수는 이야기 정도 되어야 맘 편하게 돈 주고 가서 보려고 한다. 너무 좋은 영화인데 내가 가서 못 보겠는 마음아픈 이야기는 영혼만 보냈다. 근거없는 두려움을 만드는 공포나 괜히 속만 메스꺼워지는 좀비물도 사양. 편협하다 소리를 들어도 난 그게 좋다.
그래서 이 드라마도 안 보려고 했다. 벌레는 기겁하고 잡아달라고 하면서 이런 장르는 또 찾아서 보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나도 이 드라마를 보게 된 건 넷플릭스 마케팅팀의 승리다.
리뷰 유튜버들은 물론이고, 재재나 예랑가랑 같은 일상(?) 유튜버, 그리고 ASMR, 먹방, 도서, OST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드라마를 홍보하는데, 안 볼 수가 없었다. 결국 내가 넘어가는 데 기여한 영상은 글 마지막에 다시 공유하겠다.
다른 이야기가 길었다. ‘피할 수 없으면 당해야’ 하는 우리 삶에서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는 싶지만 결국은 ‘에휴..!!’하고 나서게 되는 바보같은 책임감과 정의감을 가진 안은영에게 이입이 자꾸만 된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쓸쓸하게 죽어갈 수도 있는 전사의 삶, 생각만 해도 억울하다. 퐁 퐁 터지는 젤리 괴물 없애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심란하고 거추장스럽다. 그렇지만, 나는 알고 있으니까. 내가 세상을 더 좋게, 내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지켜주고 싶으니까. 그렇게 영웅 안은영은 각성한다.
그 옆에, 내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들어주고 이해해주는 친구가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한문 선생님은 안은영이 진짜로 활약하는 걸 보고 나서 보건 선생님을 믿었다. 래디와 아라는 혜민이가 백제 시대부터 살아왔다는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 보지 않아도 믿는 자는 복되나니, 끊임없이 의심하고 따지는 게 습관이 되어버린 나도 누군가를 저렇게 가끔은 바보같이 믿어주고 싶어졌다.
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드라마 보느라 잠을 못잤더니 지금 너무 졸린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덧붙이는 것으로 하고.. 너무너무 신나서 드라마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영상 하나를 소개하며 <보건교사 안은영> 리뷰 아닌 리뷰를 마친다.

https://youtu.be/oa2GIfnVbB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