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이야기/책

따뜻하고 단단한 이야기, ‘떨리는 게 정상이야’를 읽고

E.K.Lim 2019. 1. 1. 14:47
떨리는 게 정상이야 - 10점
윤태웅 지음/에이도스


최근에 번역서를 많이 읽은 탓인지, 책보다는 페이스북 포스팅을 많이 접한 탓인지, 원인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며칠 전 글을 쓰면서 스스로에게 참담한 마음이 들었다. 문어(체)의 정돈된 느낌보다는 구어체의 앞뒤없고 시끄러운 느낌이 문장 곳곳에 묻어 있었고, 적절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거나 비루한 단어들만 떠올랐다.
그러던 중 접한 윤태웅 교수님의 책 ‘떨리는 게 정상이야’의 문장들은 마치 녹차를 마시는 듯한 청명한 느낌을 주었다. 학생들과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잘 정제된 문장에 담겨 있어 느끼하고 달큼한 불량식품들을 먹은 듯 텁텁한 입을 헹구어주듯 마음까지 개운하게 만들어 주었다.
학자로서 자신의 신념을 굳게 하면서도 시민으로서 세상에 대한 공정한 시선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 글 곳곳에 배어 있다. 보다 올바른 믿음을 갖기 위해 나의 논리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기 위한 방법들을 배우기에 좋다.

... 논리학에서 이야기하는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를 저지르지 않고 ‘자비로운 해석’을 해야 할 필요도 그래서 있습니다. 상대방의 논리를 가장 약하게 만들어 공략하는 게 허수아비 공격이라면, 반론을 펴기에 앞서 그 논리를 상대방에게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이해해주는 게 자비로운 해석입니다. 자비로운 해석은 자기 자신의 논리를 강하게 하는 데도 보탬이 됩니다. 마치 운동 시합에서 약팀보단 강팀을 상대하는 게 자신을 더 강하게 할 수 있듯 말입니다.

교수님이 말씀하신 ‘자비로운 해석’은 교수님의 글에도 매우 자주 활용된다. 너의 사정을 들여다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아마도 너는 이런 점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었겠지? 틀린 말이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는 게 이런 이런 점에서 더 낫지 않겠니? 하고, 제자를 다독이듯 생각하신 대로 이끄는 부드러운 논리가 마음에 와서 꽂혔다.

인공지능과 데이터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이 부분은 기억을 위해 기록해 두고 싶다. 핵심이 데이터라는 이야기다. 요즘 읽고 있는 데이터베이스론은 우리 회사의 부사장님과 전무님이 교수님과 공저하신 책으로, 상당 부분 데이터에 대한 우리 회사의 철학과 지식을 기반으로 쓰여졌다. 거기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용자 접점이 어픔리케이션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어플리케이션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지만, 어플리케이션이 기술의 발전에 따라 변하더라도 계속 남아 있을 데이터가 핵심이고, 이를 잘 관리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소프트웨어가 이미 상당 부분 오픈 소스로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데이터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데이터는 누가 제공하고 누가 소유하며 어떻게 관리되는가?’와 같은 질문 말이다. 나의 상사인 상무님께서 말씀하시는 데이터에 관한 다음 세대의 아젠다, ‘데이터 거버넌스’가 바로 이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한 기업을 대표해 일하는 이른바 ‘현업’이 아닌 컨설턴트로서 이 데이터 거버넌스를 비즈니스 모델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어떻게 당장의 이익을 담보하지 않는 데이터 거버넌스에 대해 고민하고 이를 바꿔 나가라고 고객을 설득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에 너무 날이 서 있습니다. ... 소모적이었지요. 날카로운 논리를 설득력있게 펴기 위해서라도 표현의 날은 무디게 해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설득을 가장한 몰아세우기가 파워 게임의 한 기술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법정 드라마에서 본 한껏 힘이 들어간 목소리와 빠른 말로 상대방을 정신없이 두들기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던 탓이다. 언제부턴가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부드러운 언어와 절제된 목소리, 진중한 단어 하나 하나의 선택이 말의 힘을 만들어낸다. 머리로는 알면서도 변화와 성장이란 것이 참 미루기 좋은 일이지만, 2019년에는 한 살 더 먹을 테니 조금 더 나아져 보고 싶다.